AI 산업혁명
K‑AI 착수식과 ‘국가대표 AI’의 탄생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2025년 9월 9일, 서울 명동 르메르디앙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K‑AI)’ 프로젝트 착수식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 그리고 K‑AI 사업자로 선정된 다섯 기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SK텔레콤, 네이버클라우드, LG AI연구원, NC AI, 그리고 업스테이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착수식의 하이라이트는 이들 기업이 ‘K‑AI 기업’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받고, 전용 엠블럼을 수여받은 순간이었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수여식이 아니라, 한국형 인공지능의 주권을 선언하고 세계적 경쟁 속에 당당히 발을 내딛겠다는 의지를 담은 자리였다.
이날 착수식은 세 가지 중요한 신호를 던졌다. 첫 번째는 상징성이다. 다섯 개 컨소시엄이 ‘K‑AI 기업’으로 지정됨으로써 이들의 연구 성과와 기술은 국가 대표라는 이름으로 보증을 얻게 된다. 두 번째는 속도다. 착수식 이후 본격적인 개발과 실험, 그리고 평가 단계가 빠른 주기로 이어질 예정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6~9개월 주기의 순환 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조기 성과를 가시화하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세 번째는 규모다. GPU 인프라 확충, 데이터와 인재 육성, 그리고 연산 자원의 대규모 확보가 함께 추진되면서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드러났다.
참석한 다섯 개 기업의 전략과 강점은 서로 달랐다. SK텔레콤은 통신과 미디어, 그리고 모빌리티 전반에서 대규모 사용자 접점을 활용해 ‘국민 일상형 AI’를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방대한 한국어 데이터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해 플랫폼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LG AI연구원은 제조와 헬스케어, 가전 등 산업 현장과 긴밀히 연결된 AI 모델을 통해 공정 최적화와 품질 혁신을 앞세웠다. 게임 산업에서 강점을 가진 NC AI는 실시간 콘텐츠 생성과 운영 자동화에 주목하며, 새로운 AI 활용 사례를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업스테이지는 유일한 스타트업으로서 민첩성과 실행력을 무기로 B2B 생산성 AI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렇게 다섯 개 기업은 공통된 목표 아래 각기 다른 분야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K‑AI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세 가지 아키텍처가 핵심이다. 첫째는 컴퓨트 인프라다. GPU 확보와 효율적인 자원 활용, 그리고 온디바이스·엣지 연계 전략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는 데이터다. 한국 사회의 언어적·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반영하는 고품질 데이터셋이 필요하다. 셋째는 평가 체계다. 단순한 벤치마크를 넘어, 안전성과 산업별 정확도, 장기적 일관성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다차원 평가 체계가 요구된다.
정책과 산업 전반에도 파급 효과는 클 것으로 보인다. 행정과 교육, 의료 등 공공 서비스의 전환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고, 제조와 금융, 물류 같은 산업 현장에서는 자동화와 효율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표준화된 API와 샌드박스를 통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도 이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전 사회적 협력 구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위험 요인도 존재한다. GPU 확보 경쟁에서 비롯될 수 있는 비용 상승, 저작권이나 개인정보와 같은 데이터 리스크, 모델의 환각 문제, 보안과 안전의 허점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처 추적 시스템, 레드팀 운영, 비용 최적화 전략, 그리고 국제 표준과의 정합성이 필수적이다. 또한 각 팀이 고립되지 않고 공동의 컴포넌트를 공유해야 한다는 과제도 남아 있다.
앞으로의 실행 로드맵은 뚜렷하다. 1년 안에는 산업과 공공 분야에서 50여 개 과제를 상용화하고, 평가 체계를 공개해야 한다. 2년 후에는 멀티모달 모델과 온디바이스 AI를 상용화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3년 후에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형 AI 모델이 탑티어 반열에 오르고, 해외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
결국 이번 착수식은 단순히 다섯 개 기업에 엠블럼을 수여한 의식이 아니라, 한국 AI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었다. ‘K‑AI 기업’이라는 호칭은 국가의 신뢰를 상징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섯 기업이 실제 성과를 증명하고, 국민과 세계가 체감할 수 있는 AI 기술을 보여줄 때 비로소 이번 착수식의 의미가 완성될 것이다. K‑AI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공동의 약속으로 자리 잡고 있다.
편집위원 이현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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