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혁명
엔비디아와 미국 의회의 충돌
― GAIN AI 법안이 불러온 글로벌 AI 패권 전쟁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 서론: AI 반도체를 둘러싼 새로운 전장
2025년 9월, 미국 의회가 추진 중인 ‘GAIN AI 법안(Guaranteeing Access and Innovation for 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Act)’은 단순한 수출 규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지 기술의 흐름을 통제하는 법안이 아니라, AI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제 전쟁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신호탄이다. 엔비디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AI 칩을 둘러싼 긴장은 경제와 안보, 기술 리더십이 복잡하게 얽힌 국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 법안의 주요 내용과 규제 범위
GAIN AI 법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첨단 AI 칩의 수출 이전에 미국 내 수요를 반드시 우선 충족해야 한다는 의무화 조항이다. 이는 공급망 불안정 속에서 자국의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둘째, 일정 기준 이상의 성능을 가진 GPU의 수출 제한이다. 총연산 성능(TPP)이 2400 이상이거나 메모리 대역폭이 특정 수치를 초과하는 칩은 수출 허가가 필요하며, TPP 4800 이상이면 수출 자체가 금지된다.
이 기준은 사실상 엔비디아의 대표 제품군인 H100(1만6000 TPP), B300(6만 TPP), 그리고 AMD의 MI308 등을 정조준한다. 첨단 AI 모델 훈련의 핵심인 GPU가 규제 대상이 되면서, 글로벌 AI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 엔비디아의 반발과 그 논리
엔비디아는 이번 법안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미국 기업 경쟁력 약화: AI 칩은 글로벌 시장에서 동시에 소비되는 전략 자산이다. 특정 국가에 공급을 우선시하면 해외 고객과의 신뢰가 무너지고, 미국 기업이 스스로 시장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 글로벌 기술 경쟁 위축: 수출 제한은 단순한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을 넘어, 전 세계 AI 연구와 산업 발전 속도를 저해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미국이 주도권을 유지하기보다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국내 시장의 과잉 우대 논란: 엔비디아는 “해외 고객을 위해 미국 고객을 소외시킨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미 미국은 엔비디아 매출의 절반(49.9%)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28%), 싱가포르(18%) 등 글로벌 주요 시장도 무시할 수 없다.
- 국제정치적 맥락: 중국 견제와 공급망 전쟁
GAIN AI 법안은 본질적으로 중국 견제 전략의 연장선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AI 확산 규칙(AI Diffusion Rule)’과 마찬가지로, 첨단 AI 칩의 중국 유입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AI 수요 시장 중 하나이며, 동시에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기술 경쟁자다. 엔비디아가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끝에 제한된 조건에서 중국 수출을 재개한 사실은, 이 법안이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정치적 압박 수단임을 보여준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동맹국 중심의 ‘칩 동맹’을 통해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는 국경을 초월한 복잡한 협력망 위에 세워져 있다.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안보 이익을 지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혁신을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전망과 과제: 패권 경쟁 속 기업의 생존 전략
법안이 통과될 경우, 엔비디아와 AMD 같은 칩 제조업체들은 미국 내 주문 충족 여부, 수출로 인한 국내 공급 지연 여부, 해외 고객과의 조건 비교 등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기업들에게 행정적 부담과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다.
또한 글로벌 고객사들은 미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대체 공급처를 찾거나 자체 칩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엔비디아의 글로벌 독점적 위치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단순한 로비나 반발을 넘어, ▲해외 생산 거점 다변화 ▲동맹국과의 기술 협력 강화 ▲신규 아키텍처 개발을 통한 규제 회피 전략 등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결론: AI 칩, 기술이 아닌 정치의 무대
GAIN AI 법안은 단순히 GPU 수출을 제한하는 규제가 아니다. 이는 기술이 정치와 안보의 무대에서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엔비디아의 반발은 단순한 기업 이익 수호가 아니라, 글로벌 기술 경쟁 질서의 변화를 우려하는 외침이다.
앞으로 AI 반도체를 둘러싼 논쟁은 기술적 진보와 함께, 국가 전략, 공급망 전쟁, 기업 생존 전략이 뒤얽히며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AI 칩은 이제 반도체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 패권을 좌우하는 정치적 무기이자 경제적 지렛대가 되었다.
편집위원 이현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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