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U 아이언우드 혁명
구글의 9000억 달러 갬빗이 엔비디아 제국을 겨누다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 엔비디아의 겨울, 그리고 구글의 봄
2025년 12월, 실리콘밸리에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지난 수년간 “AI는 곧 엔비디아(Nvidia)”라는 공식은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졌다. 젠슨 황의 가죽 재킷이 무대 위에서 빛날 때마다 전 세계의 자본은 엔비디아로 쏠렸다. 그러나 구글이 내놓은 7세대 TPU ‘아이언우드(Ironwood)’는 이 견고한 성벽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블룸버그가 보도한 “구글이 AI 칩 시장의 20%를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AI 산업이 ‘범용성(General Purpose)’의 시대에서 ‘효율성(Efficiency)’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1800억 달러(약 265조 원)라는 예상 매출액은 구글이 검색 광고로 벌어들이는 돈에 맞먹는다. 즉, 구글은 이제 ‘검색 회사’에서 ‘컴퓨팅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 왜 지금 ‘아이언우드’인가? : 경제성의 승리
엔비디아의 GPU는 훌륭하다. 너무 훌륭해서 탈이다. 그래픽 처리를 위해 태어난 GPU는 AI 연산에도 탁월하지만, 불필요한 기능 때문에 비싸고 전기를 많이 먹는다. 반면, 구글의 TPU는 오직 딥러닝(Deep Learning)만을 위해 태어난 주문형 반도체(ASIC)다.
기사에서 언급된 길 루리아 연구원의 분석처럼, 앤트로픽(Anthropic)과 메타(Meta)가 구글의 TPU를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성능은 엔비디아에 근접했지만, 가격과 전력 효율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AI 모델이 거대해질수록 ‘학습(Training)’보다 ‘추론(Inference)’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제미나이 3를 매일 수십억 명에게 서비스해야 하는 구글 입장에서, 엔비디아 GPU를 쓰는 것은 마치 배달 오토바이 대신 슈퍼카로 피자를 배달하는 것과 같은 비효율이었을 것이다. 아이언우드는 이 ‘배달’에 최적화된 초고성능 전기 스쿠터인 셈이다. - 풀 스택(Full Stack)의 공포: 칩부터 서비스까지
구글의 무서움은 단순히 칩을 잘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크 이옹 매니저의 지적대로 구글은 ‘전체 스택’을 가진 유일한 회사다.
- 하드웨어: TPU (아이언우드)
- 플랫폼: 구글 클라우드
- 모델: 제미나이 3 (Gemini 3)
- 서비스: 검색, 유튜브, 안드로이드
엔비디아는 칩을 팔지만 서비스를 갖지 못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비스는 있지만 칩(Maia)의 역사가 짧다. 구글은 TPU로 자체 모델을 학습시키고, 그 모델을 자체 클라우드에서 돌려, 전 세계 사용자에게 뿌린다. 이 수직 계열화가 완성되는 순간, 가격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 엔비디아가 이례적으로 “우리는 구글의 성공을 기뻐한다”며 짐짓 여유로운 척 성명을 냈지만, 그들의 속내는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 한국 AI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 ‘탈(脫) 엔비디아’를 준비하라
이러한 글로벌 지각변동은 한국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 고객사를 다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구글 TPU, 아마존 트레이니엄 같은 ASIC 시장이 커질수록, 이에 맞는 커스텀 메모리 솔루션이 필요하다.
또한, 국내 AI 스타트업과 기업들은 엔비디아 GPU 확보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구글 TPU를 포함한 다양한 NPU(신경망처리장치)를 활용하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아이언우드’의 등장은 AI 민주화를 앞당길 것이다. 컴퓨팅 비용이 낮아지면 더 많은 서비스가 탄생한다
2026년, AI 전쟁의 승패는 ‘누가 더 똑똑한 칩을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싸고 효율적으로 지능을 생산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구글의 9000억 달러 갬빗(Gambit, 체스에서 초반에 기물을 희생해 승세를 잡는 전략)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새로운 판을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